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끝나지 않은 촛불의 고통, 공정한 사회라고?"


입력 2010.10.25 08:54 수정

<인터뷰>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재산피해소송 이끄는 이헌 변호사

"물질적 보상 아닌 원칙 어긴 책임 묻자는것…가족까지 협박 당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인한 광화문 상인들의 영업손실 및 위자료 등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헌 시변 대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인한 광화문 상인들의 영업손실 및 위자료 등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헌 시변 대표.
모두가 ‘힘들지 않겠느냐’고 손을 내젓던 소송이었다. 광장 민주주의, 진정한 시민 민주주의의 발현이라며 높이 평가받는 와중에 민주주의 혹은 시민의식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일’을 상대로 비판을 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실패를 전제하고 시작해야 할 것일는지도 모른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는 “생각보다 어려웠던 소송이었다”고 말했다.

장기간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인한 광화문 상인들의 영업손실 및 위자료 등 손해배상청구소송. 지난 2008년 7월 17일 소장 접수 이후 벌써 2년하고도 3개월 가량이 흘렀지만, 이 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원래 이 소송의 목적은 물질적 ‘보상’을 받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원칙, 질서를 어긴 데 대한 법적 책임을 묻자는 것,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은 만들지 말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이헌 공동대표는 “아마 당장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라고 말했다. 소송위임을 받아 이를 대리했던 그나,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인들이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송을 접수했던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 우호적 시각이 강했던 때였다. 일각에서는 ‘쿠데타’라고까지 표현하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정당한 문제제기, 시민권력의 살아있음을 보여준 예라고 추켜 세우는 상황에서 광우병 촛불집회 주최측에 손배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딴지걸기’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계속되는 촛불집회로 상인들의 걱정도 위기감도 높아지던 때였습니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령하고 청와대 행진을 계속 시도하면서 상인들은 사실상 영업을 포기해야 했지요.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절박한 문제이니 결코 작지도 가볍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개개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7월, 도로는 시위대가 골목은 경찰력이 차지했다. 불법·폭력집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양측 모두 불필요한 충돌은 자제했지만, 경찰 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는 계속됐다. 으레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저녁약속을 잡던 시민들은 광화문과 종로만은 피하기도 했다.

골목 안 음식점 등은 이른 새벽처럼 한산해졌다. 시위가 계속되는 현장에서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광화문과 종로 일대 상인들은 캠페인과 집회를 통해 촛불집회 중단과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민주화가 ‘열사’의 희생으로 이뤄졌듯 상인들의 희생은 촛불집회 주최측에 있어선 당연하고도 값진 참여였다.

이 공동대표가 촛불집회 손배소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들 상인때문이었다. 이곳저곳에 호소하다 시변 사무실까지 찾아온 한 상인의 말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이 공동대표에게 “피해를 배상받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가게 운영료라도 나오게 최소한의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촛불집회 주최측인 광우병대책회의 관계자를 만나서 참여연대 사무실까지 갔었다는 이 상인은 이 공동대표에게 “이제 그만 중단해도 그 뜻은 충분히 전하지 않았느냐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다. 100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도와줄 방법이 없느냐”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그때 그분을 보고 ‘어떻게든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일반인이고, 생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그 분들이 원하는 최대한의 것은 ‘의사표시’였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집회중지가처분’ 신청 등을 얘기해드렸습니다. 본인들이 그 이상의 것은 신경을 쓸 여력도 상황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광우병 대책회의 관계자를 만나서 호소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이미 다녀왔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별 효과가 없으니까 저희에게 오신거죠. 하지만 그 때까진 소송을 하자, 그런 얘긴 없었죠.”

손배소 얘기가 나온 것은 모 TV프로그램에서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패널이 “오히려 (집회로 인해) 매출이 올랐다”고 말한 이후였다. 촛불의 상처에 크게 데인 상인들은 분노했다. 몇 달동안 단순히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도 국민이었건만, 여러 곳에 호소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억울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피해를 끙끙 앓아야 했던 괴로움 등이 한꺼번에 터졌다.

손배소 이전에 이 공동대표는 피해 상인들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피해 보상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되는 상인들의 피해를 변상해주고 이를 대책회의 등 시위 주최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반응이 없었다. 광화문 상인들이 나선 것도 ‘내 생업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과 서운함에서였다.

이 공동대표는 “손배소에 얼마나 참여를 할까 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는 광화문 천막은 ‘어떻게 참여하면 되냐’고 묻는 상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온라인으로도 참여방법을 묻는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광화문 일대에 거주하거나 직장을 가진 일반시민들도 참여의사를 밝혔다.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소송은, 그러나 광우병 대책회의측의 ‘명단공개’로 난관에 봉착했다.

이 공동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아 자신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덕분에 가다듬었다”라면서 “허나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던 분들께는 너무 죄송했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으로 참여의사를 밝혔던 시민들 가운데 241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그리고 광우병 대책회의의 소송 참가자 명단 공개 이후 3분의 1이 줄었다. ‘친정부성향의 단체’ ‘한나라당 이중대’ ‘친MB단체’라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부담을 느낀 상인들은 ‘피해는 입었지만 더 이상 소란스러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하나 둘씩 소송을 포기했다. ‘보상’이 아니라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상인들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 2008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명동, 종로, 을지로를 거쳐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한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가로막히자 자리에 앉아있다. 지난 2008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명동, 종로, 을지로를 거쳐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한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가로막히자 자리에 앉아있다.

“바른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공익소송이었고, 그것만을 생각했다면 그 분들이 포기 못하도록 어떻게든 설득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겠더라고요. 가게로 욕설전화가 걸려오고, 식당 문에는 비난하는 쪽지가 붙어있기도 하고. 이름도 가게명도 다 공개됐지만 그렇다고 도망갈 순 없는 거니까요. 생계가 걸린 일인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대책회의를 고발했지만, 사건은 불기소처리됐다. 의뢰인도, 대리인도 불기소처분에 반발하지 않았다. “이미 대책회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는데, 그런 분들을 법정에 세워 더욱 심적 부담을 안겨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하는 게 그분들을 돕는 길이었다”고 이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의뢰인들은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여론이 높은데다 사법부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으니 이기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시간을 끄느니 빨리 해결을 봤음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던 PD수첩 국민소송은 3심이 진행 중인 것에 비해 야간 옥외집회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결정과 야간 옥외집회를 둘러싼 위헌 재청 등으로 재판을 더디게 진행됐다. 매출 하락을 입증하는 자료를 일일이 찾고 이를 다시 대조해보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대책회의에 대항하는 법적 사례도 많지 않았다. 대책회의는 시종일관 “우리가 상인들을 직접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책임질 이유가 있느냐” “피해를 입힐 의도가 애초에 없었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맞섰다. 광화문 상인들이 문제삼은 ‘영업수행의 자유’보다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한 기본권이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 공동대표는 “구체적 자유가 침해됐는데 그보다 우월한 자유라고 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국민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동시에 보호받을 권리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헌법에도 국가는 불법·폭력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본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미칠지 모르고 시작한 게 아닌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생긴거죠. 국가도 시위 주최측도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겁니다.”

광우병 대책회의 소속 단체와 도로점거 및 청와대 진출 불법시위를 주도한 인물 외에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소인에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친MB단체라면 어떻게 대한민국 정부를 고발했겠느냐”고 말한 이 공동대표는 “재판부에서 2차례에 걸쳐 대책회의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조정을 권유했지만 저쪽에서는 완강했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의 돌발행위를 선동한 적도 없고,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는 대책회의측의 논리가 정당화되더라도 일련의 혼돈을 불러일으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개별 시위 참여자의 행위는 시위 주최측에 책임이 있다는 판례가 있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도 이런 이유로 뒤늦게 기소됐었다.

이 공동대표는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면 최소한 국민 개개인이 법적 책임을 지거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건 권력 뿐만 아니라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도 포함되는 겁니다. 진보적 단체라고,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예외를 둬선 안됩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 정권교체 후 유지되는 상황에서 ‘시민혁명’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손실을 안겨주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어요. 법적 자유라는 건 무제한이 아닙니다. 제한될 수 있는 범위가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혼란을 만들어 놓고 ‘책임이 없다’고 하니 편법적이고 비겁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더군요.”

이 공동대표는 “나는 광화문 상인분들에 비하면 그렇게 피해를 입었다 말하기도 뭣하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도 그의가족들도 시달림을 당했다. 몸 담았던 로펌에서 공익소송에 전념하기 위해 나온 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사무실로 집으로 욕설이나 비난 등을 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고등학생이던 아이는 학교에서 “너희 아빠가 이헌이라며?” “미친소 먹어도 된다고 하는 이명박 정부 사람이라서 좋겠다” “너도 미국소 먹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아이는 학교를 옮기고 집은 이사했다. 전화번호도 바꿨다.

이 공동대표는 “그리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그런 낌새가 있을 때 나름대로 대처해서 잘 넘겼다”고 웃었다. 낙천적이고 의지가 강한 성격 덕에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가족에게 고마운 점이 많다”고 슬그머니 덧붙였다.

“공정은 법적으로 ‘정의’ ‘공평’이라는 개념입니다. 공정한 사회가 실현되자면 정의와 공평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이 규명돼야 하죠. 원칙을 어긴 것은 누구인가, 동일한 법 기준과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것들이 그겁니다. 공정한 사회라는 것 결국 이런 거들이 잘 구현돼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승패를 떠나 법적인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사례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번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불법이나 편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걸 새삼 알려주는 그런 결과 말입니다.”[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

'인터뷰'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